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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까지 산다는데 자녀교육비로 허덕이는 사회

 

우리나라는 2009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2018년도에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2040년경에는 일본 독일등과 함깨 고령국가대열에 진입하게 됩니다. 각종 의약기술의 발달으로 1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현재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진행되는 시점으로 조기퇴직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60세가 정년이라고 하면, 60세 정년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정년을 채운다 하더라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이 몇십년이나 됩니다. 100세라고 가정하면 40년이상을 더 살아야 합니다.

 

결국 노후대비를 어떻게 해야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며, 적절한 노후대비가 없으면 노년기에 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외국처럼 복지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개인들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야 합니다.

 

얼마전 통계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노후대비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며 그 이유로 가장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비를 꼽고 있습니다. 취학전부터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들어가는사교육비가 어마어마 합니다. 대학을 가더라도 대학등록금때문에 부모님 등골이 휩니다. 대학등록금 뿐만 아니라 각종 취업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많이 지출됩니다.

 

이렇게 오랜동안 자녀들 교육비와 양육비를 책임지고 사는 것이 현재의 부모님들 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교육에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너도나도 사교육에 올인합니다. 무조건 일류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사자달린 직업만을 찾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꿈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냅니다. 오로지 공부하고 시험보면서 그렇게 청춘을 다 보냅니다. 아무리 가계경제가 어려워도 사교육비가 크게 감소되지 않습니다.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 한국의 부모님들이 선택한 것은 자녀수를 줄이는 것 입니다. 그래서 현재 세계최저의 출산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녀수 줄이는 것이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 되었으며 그자체가 사회적으로 또다른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위말하는 일류대학을 진학하더라도 주류사회에 편입하여 경제적 부를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돈많이 번다는 사자달린 직업을 가진사람들도 큰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과거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었습니다. 자식이 좋은대학 입학해서 좋은데 취직하고 돈많이 벌어서 부모님을 봉양한다는...일종의 사이클이 있었습니다. 장사로 치면, 남는 장사였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이클은 무너진지 오래되었으며 앞으로는 더욱 심해집니다. 위에서 말했드시 일류대학이 사회적부와 명성과 크게 비례하지 않게됩니다. 현재 인기있는 직업역시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자식도 같이 늙어가면서 자식에게 봉양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정계층들이 더욱 공고하게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해가면서 계층사다리의 이동을 철저하게 단절시켜 놓습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위에서 말했듯이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듭니다. 좋은 대학은 특별한 혜택과 부를 주지 않습니다. 보다 다양한 꿈을 꾸면서 다양한 직업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현재와 같은 주입식 암기교육보다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새로운 부와 명예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올 것 입니다.

 

현재 우리교육이 처한 위기와 문제점은 경쟁만 강조하는 학벌위주의 교육시스템과 더불어 학부모님들의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왔기에 한순간에 모든 가치관을 바꿀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다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다보면 우리아이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어떻게 자라야 할지 보일 수 있습니다. 방치하고 방관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부모님의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지 아이의 꿈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영어 수학민 공부하는 것보다 인문학 서적을 같이 읽고 서로 대화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더욱 가치있는 시간이 될 것 입니다. 사실 저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불행은 멈출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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