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미시마 유키오

세상/책 읽기/책리뷰 2015. 5. 27. 09:58 posted by 하늘이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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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미시마 유키오

 

 문학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죽음을 본다.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처럼 세상의 행복을 기준으로 살아가던 인간이 죽음의 순간 느끼게 되는 참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반성이 있었다면, 미치앨봄의 ‘모리와 함께와 화요일’에서는 죽음의 순간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아야 할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憂國(우국)은 자신의 완성된 가치관과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자살(할복)을 선택하여 자신의 완성된 삶의 종결지로서의 죽음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사실 이 작품은 긴 장편은 아니지만 짧은 단편속에서 강렬한 죽음의 순간을 보여주었으며, 읽고 있는 내내 그 강렬함과 잔혹함(?)으로 인해 내내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에서 1926년 2.26사건을 계기로 일본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구테타 사건이 계기가 되었고, 2.29일 진압되는 속에서 벌어진다. 이 사건의 직접적 가담자는 아니었던 근위보병 제 1연대 소속의 다케야마 신지 중위는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벌인 쿠테타를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자신이 쿠테타에 참여했던 동료들을 처형하게 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당시 다케야마 신지 중위는 결혼한지 불과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23세의 레이코였다.

 

 

 

 
 신지 중위와 레이코는 서로를 신뢰하며 사랑하는 부부였다. 특히 신지 중위는 건장한 군인의 신체와 믿음직 스러운 품모를 가지고 나라에 충성하며 친구들과의 신의를 중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내 레이코 역시 아름다운 용모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두터운 믿음과 존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둘은 별 다툼없이 아름다운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2.26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사건의 주모자들이 발각되면서 신지 중위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즉 사건의 주모자들인 장교들이 신지 중위의 친구들이었고, 다음날 자신이 직접 친구들을 사형에 처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고뇌는 시작되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에게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신지로서는 또한 할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결정의 순간에 신지가 선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으로 친구들과의 신의를 지키며 나라를 배반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의 선택에 아내인 레이코 역시 자결로 동참할 것을 알린다.

 

 

 

 

남편의 신념과 그것을 따르는 아내의 신념이 결국은 죽음이라는 경건한 의식을 통해 하나의 완성된 삶을 이루어 내는 과정을 작가는 긴밀감있고 잔혹하다고 여길 정보로 치밀하게 묘사했다.

 
  사실 그 경건한 의식이라는 것이 일본식 할복을 의미한다. 신지 중위의 활복하는 장면의 묘사는 읽고 있는 내내 내 자신에게도 굉징히 힘든 과정을 같이했다. 그러나 그 할복장면을 끝가지 지켜보던 아내 역시도 남편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며, 결국 지니고 있던 은장도로 자결을 하고 만다.

 

 역사적으로도 자신의 삶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 자살, 자결, 분신을 했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의 다른 예를 심심찮게 본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도 스스로 활복자살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나타 내고자 했다.

 

아마 작가는 평생동안 자신의 신념이라고 여겼던 일들에 대해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식을 통해 그 의미를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강렬하게 살았던 삶처럼 그 작품역시 강렬하게 여운을 남긴다. 신념의 관철이라는 의미의 자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그런 죽음에 동조하기 힘든 면이 많다. 삶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내 삶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 과정속에서 내 삶속에 깃들여진 의미를 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며 사람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내 삶속에서 그 가치의 의미는 계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갈 의무가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문학작품속에서 그려진 삶의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 작품속에서 그 모습대로가 아닌 죽음에 이를 정도로 그렇게 내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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