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반 일리치의 죽음-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가 ‘죽음에 관한 또 다른 그의 해석’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1886년에 완성했다. 문학속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통해 우리는 현재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는 누구나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살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을 수용하고 가치로운 삶속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외롭지 않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모리선생님의 말씀처럼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삶은 여전히 너무 이기적이고 물질적이며 가식적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서평보기[바로가기]

 

모리선생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에 대한 자문을 계속 던져본다. 지금 소개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어쩜 현재 나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재판장이 되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멋지고 넓은 거실을 가진 집을 소유했고, 정열적이며 멋진 아내와 두명의 자식을 두었다. 물론 가족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주변의 친구들과 종종 트럼프 놀이를 하며 적당한 여유와 낭만을 유지하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 볼때는 이반의 삶에는 커다란 문제점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던 어느날 이반의 배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육체의 엄청난 고통은 결국 이반의 삶을 죽음으로 이끄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반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지면서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반의 죽음으로 얻게 될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이반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가족들 역시 진심으로 이반의 죽음을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에 피해를 받는 것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반은 왜 자신이게만 이러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는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은 당연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며 더욱 고통스러워 했다. 이반은 죽음의 사실에 직면에서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나간 세월속에 이반이 사랑했고 정열을 기울이며 살았던 것은 무엇이었가?

 

 

 


  이반은 자신의 삶의 안락함을 가져다 주는 돈과 권력, 그리고 도박에 흠뻑 그의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것이 자신의 행복한 삶의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반은 그것을 성취했고, 그것이 주는 안락함도 맛보며 더욱더 그것을 탐닉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 그가 죽음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의 두려움을 함께 해줄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여전히 모든 물질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넓고 멋진 거실과 침실, 그의 가족, 그의 친구...그는 여전히 그 속에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이반의 두려운 마음과 처절한 고독함을 함께 해줄 것은 그 어느것도 없었다.

 

이반은 철저히 혼자 버져진 사람처럼 그렇게 침실속에서 고통과 두려움에 떨면서 철저히 죽음을 혼자 맞이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최고의 두려움속에서 철저히 버려진 이반은 엄청한 혼란을 겪게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다른사람들도 다들 이반처럼 살았을 텐데... 결국 이반은 자신이 살았던 방식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추구하고 누렸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지금의 결과를 자초했다는 것을 수용하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원망의 마음대신 ‘용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줄기 빛을 보게 된다. 그가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면서 그는 죽음의 두려움 대신 다른 희망의 빛으로 그의 마지막 순간을 대신한다.

 

  인간은 누구나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언젠가는 나에게도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내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감정적 고통은 결코 물질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움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세상이 만든 행복의 기준으로 나를 자꾸 몰고간다. 물질, 권력, 명예가 죽음의 마지막에 무엇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나와 같이 옆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런 긴밀한 관계속에서 우리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친다.

 

 

300x25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