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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패자의 숨은 이야기, 길위의 황제

이 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속 패자로 인식되면서 어느 누구도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은 인물 순종,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많은 짐을 떠안았었지만 결국 무능력하고 나약하고 실패한 왕으로만 비춰졌던 순종의 고뇌와 독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언제는 승자의 입장에서만 기록되고 보존됩니다. 승자의 입장에서 바라다 본 패자의 모습은 항상 힘이 없고 나약하게만 그려집니다. 순종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왕이었지만 왕으로 살 수 없었고, 일제의 꼭두각시처럼 불쌍하게 살아왔던 임금, 역사의 큰 회오리속에서 한평생을 쓸쓸하게 살아가다가 생을 마감한 가엾은 인간으로 순종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기억속에서 순종은 불쌍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기억됩니다. 나라를 빼앗긴 왕으로서 자신의 목숨만을 부지하기위해, 한나라의 왕으로서 자존심과 체면조차 없이 철저하게 일제에 이용만 당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왜 그때 자존심을 지키고자 자결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과 조롱도 수없이 들었던 인물입니다.  한 기관지는, 책임으로는 조선 5백년의 최대 죄인이요, 인간으로는 일개 가련한 처지였다 고 평한바도 있습니다.




역사는 대부분 승자의 입장을 이야기 합니다. 패자의 이야기를 거의 건드리지 않습니다. 역사속에서 패자로 기억되는 순종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 소재 자체가 특이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많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순종의 삶, 일제시대때 있었던 일이라 충분한 자료가 없습니다. 그렇게 조명되지 않고 베일에 쌓여있는 대한제국 마지막 왕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기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작가 박영규씨의 소설입니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등 역사와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으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분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만큼 암울했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과거에 병자호란, 몽고의침입등으로 우리의 주권이 상실된 적도 있었지만, 일제시대의 어두운 과거는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당시의 일들은 생각하기 조차 싫습니다. 특히 마지막 왕으로서 나약한 순종의 모습은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고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순종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에 대한 많은 기록은 없습니다. 그저 당시의 아픈 과거속의 마지막 군주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길 위의 황제
국내도서>소설
저자 : 박영규
출판 : 살림 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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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속에서는 순종의 따뜻한 인간미와 역사적 사실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순종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일본의 천황을 방문하는 일본 방문기가 주된 테마입니다. 천황앞에서 무릎꿇고 신하임을 자인하는 대목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울분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치욕중의 치욕으로 기억됩니다. 

순종은 구차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몸부림 칩니다. 과거 몽고의 침략으로 100년동안 주권을 상실했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원나라를 뿌리치고 주권을 회복했던 공민왕을 꿈꿉니다. 현실은 외롭고 힘들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꿈으로 모든 치욕을 참아냅니다.

어머니가 일제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고, 아버지 마저 독살당하고 맙니다. 아버지 고종의 죽음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정황상 독살당한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비극과 수모를 당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해 낼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이지만 훗날을 기억하며 모든것을 참아갑니다. 그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어려운 경지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욕망은 꿈에서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의 모든 아픔과 상실은 꿈속에서 보상받습니다. 그를 괴롭혔던 조선총독부의 수장들과 일본 천황 그리고 매국노 이완용이 그들의 만행을 사죄합니다. 너무 큰 욕심으로 대한민국과 순종에게 크나 큰 아품을 주었다고 사죄합니다. 꿈은 그사람의 욕구와 잠재의식을 반영합니다. 현실은 참혹했지만 꿈속에서나마 사과를 받습니다. 순종의 의식과 욕구는 이렇듯 꿈속에서 많이 표현이 됩니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지만 오로지 꿈속에서만 그는 위로받고 보상받습니다. 위로받고 보상받고 싶지만 꿈에서 밖에 받을 수 없었던 그의 보상심리가 참으로 안타깝게 그려집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순종을 10여 년이 넘게 가까이서 보필했다고 하는 일본인 관료 곤도 시로스케는 그의 저서에서 순종을 가리켜 아주 순수하고 대세를 아는 총명한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타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본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역사의 격랑속에서 순종에게만 모든 책임과 비난을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는 생각입니다.

역사는 씌여진 사실만을 기억합니다. 역사속에서 순종은 패망한 나라의 마지막 군주로서 죄인으로 그를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고뇌와 참담한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역사속에서 한 인간의 고뇌와 고민은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아래에서 묻혀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어느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입니다.

역사속에서 패자의 인간미를 그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적 뒷 이야기속에서 무수히 아픔을 참아내며 오해받고 비판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양지만 보아왔기에 그늘에 감춰진 그들의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만 후대에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순종이 잘했다고 두둔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그를 옹호할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측은지심이 들 뿐입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바퀴아래에서 고뇌하고 좌절했던 우리 인간들의 나약한 몸부림에 허무함을 느낄 뿐이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많은 눈물과 고통까지도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듯이, 세월앞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역사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기억합니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그 소중한 가치도 묻혀져 버립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승자와 패자가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모든 인간들의 뜨거운 고뇌와 번민이 하나 하나씩 기둥이 되어 성립됩니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역사에 관한 시를 인용해 보고자 합니다. 역사는우리가 알고있는 사실외에 숨어있는 진실과 아픔이 더욱 많은 것입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트톨트 브레히트>


사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황태자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바위처럼 나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내겐 감옥이나 다름없는 무섭고 암울한 궁궐의 공기를 더 마시고 싶지 않았다. 어마님이 처참하게 참살당한 그곳에서 언젠가는 나도 적에게 목을 내놓고 말 것이라는 공포에 질려 살고 싶지 않았다. 열차를 타고 달려보지 않았다면 내 속에 그런 마음들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저 나는 왕자로 태어나서 왕으로 사는 연습만 해왔고, 왕으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밖에 몰랐다. 늘 머리 숙인 궁인들과 표정 없는 내시들이 내 손과 발이 되어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그곳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 적으로 돌변하여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에 재갈을 채워버릴지 모르는 대신들의 화살촉 같은 눈빛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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