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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페스트-대재앙 앞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는 보장되어야 한다

 

질서유지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추구도 무시되어선 않된다.


  물론 대재앙이 닥쳐오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공익과 질서체제를 유지한다는 명목에서 가해지는 각종의 규제와 법령속에서 개개의 인간들이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를 억제하고 온전히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결국 언제 끝날줄도 모르는 패스트라는 질병에 대한 고통의 인내, 공공의 질서유지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에 대한 절제의 강요 등의 이중의 고통을 어떻게 개인들에게 참으로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질병은 어쩔수 없는 고통이지만, 정부가 내놓는 법령과 규제속에서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무감각해 지고, 생활의 규제속에서 무기력하게 변하는 인간의 모습이 책을 통해 그려집니다. 그러나 패스트라는 대재앙속에서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몇몇의 인물들 속에서 적어도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를 가지면서 삶에 대해 생기를 찾으며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대재앙앞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추구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대재앙이 닥치면 물론 개인들은 대책없이 대재앙을 맞이하고 속수무책이 될 수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부가 취하는 조처에 대해 일단 수긍을 하지만, 정부는 여러 법령에 의해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기본적 권리를 종종 억제하게 됩니다.

 

오랑시는 패스트로 인해 도시폐쇄를 명령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오랑시 시민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격리조치, 소식단절 등 그동안 편안게 누려왔던 여러 가지 행복을 누렸던 것에 대한 포기에 따른 고통을 느께게 됩니다.

 

특히 시청에서 패스트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에게 강압적으로 명령을 따르게 합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헌병들로 하여금 무기를 사용하여 시민들가운데 부상자나 사상자가 발생되고, 공권력으로 시민들을 위협함으로 해서 시민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했습니다.

 

 


페스트

저자
알베르 까뮈, 알베르 카뮈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1-04-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카뮈는 살아 있을 때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주춧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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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저자
알베르 까뮈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4-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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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저자
알베르 까뮈 지음
출판사
책세상 | 1998-03-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첫 구상 이후 7년여의 세월을 거쳐 발표된 [페스트]는 출간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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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서유지는 패스트에 대한 공포에 대한 두려움과 정부에 대한 두려움까지 겹치면서 대재앙에 맞설수 있는 시민들의 용기가 좌절되며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아울러 패스트에 대한 예방조처의 과정역시도 강하게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자신이 받는 조처가 단순히 예방조치가 아닌 패스트의 실험재료가 될 뿐이라고 느끼며 정부에 협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 아무리 대재앙이 와도 인간다운 최소한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것은 대재앙에 맞서는데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행복에 대한 기본권이 지켜져야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하게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추구가 너무 좌절될 때,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정책에 동참하지 않으며, 때론 너무 무기력해져 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패스트와 맞서서 싸우는 것은 개개인들입니다. 랑베르가 말했듯이 공공의 복지역시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에 의해 이룩되듯이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수준에 이르게 되면 맞설싸울 수 있는 의지가 부족해 집니다. 대재앙에 맞서서 싸울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좌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추구가 보장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질서유지를 위한 인권침해에 저항해야한다.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시청에서는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돌보지 않았다. 특히 패스트가 가장 절정에 달하는 시기 엄청난 시체들이 쌓여가고 매장하는 절차에 있어도 사람다울 수 있는 인권들이 무시되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과 애도는 염두에 둘 수 조차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절차적으로 이루어져 갔다. 시당국이 시체를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속에서 인간으로 가져야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침해를 당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순간 개와 구분되는 것은 서류에 싸인을 하느냐 않하느냐의 차이였다고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속에서 개인의 감정과 관심사는 상당부분 무시되거나 억압되는 것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개인의 감정과 관심사가 철저히 무시되는 상황을 더욱 참아내지 못하고 차라리 페스트와 직면하는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즉 가족내 페스트 환자가 발생할 경우 격리시키지 않고 차라리 문을 닫고 환자를 자신들과 같이 끝까지 같이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당국은 강제명령, 경찰 개입, 부장한 병력을 환자를 탈취하는상황이 종종 연출되었습니다. 즉 공공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부정되거나,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인간을 도구적인 존재로 취급한다면 심각한 인간존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재앙의 순간에도 질서유지라는 이유로 개인의 인권은 무시당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지기 쉽기 때문에 인권침해에 대해 당당히 저항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개인적 관심사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개인적 관심에 대한 실현과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시청에서 실시한 도시폐쇄령이 내려진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소식단절 등에 더욱 고통스러워 했으며, 사람들은 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고통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강하게 작용을 했다.

 

즉 패스트에 대한 공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별에 대한 고통을 더 큰 아픔으로 느꼈던 것이다. 시청직원이었던 그랑 조차도 자신이 시청직원으로서 질서유지를 위해 성실히 일을 하였지만, 그랑은 사랑했던 잔에 대한 회상을 하며 보고 싶어했던 사랑에 대한 감정은 그 어느 것도 막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랑베르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대한 고통은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한 개인적 감정들로 괴로워 했습니다. 대재앙이 닥쳐오더라도 개인의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을 막지는 못합니다. 

 

 

 


  어떤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격리에 대해 정부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는 경우도 종종 보였습니다. 가족내 패스트 환자가 생겨서 격리를 해야 했지만, 결국 죽음에 처하게 된다면 차라리 패스트와 직면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환자를 격리시키지 않겠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며 공공의 법령을 어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또한 예방 격리 조치에서 풀려나 돌아온 사람들이 상을 당한 슬픔과 불행으로 인해 반쯤 광란상태에 빠져 페스트를 태워 죽이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기 집을 불을 지른 경우도 있었다. 이에 시당국은 다시 엄중한 형벌을 내리겠다는 법령을 공포하지만 그 어떤 질서보다 개인적 감정이 억눌리거나 이익이 침해된다면 사람들은 질서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때 주체성(자발성)을 살릴 수 있다. 재앙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시에서는 더욱 엄격한 제재를 가했다. 사람들은 거의 무기력해져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오랑시에서 시키는 것을 따르면서 우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제속에서 기계적인 삶을 살며 늘 피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를 위해 오랑시는 끊임없이 규칙을 따르라고 강요합니다. 개인의 선택보다는 질서의 규칙을 따르는 수동적인 시민이 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시민들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정해진 규칙을 소홀이 여기게 됩니다. 수많은 소독절차를 쉽사리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페스트 환자에게 달려가서 껴안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민들의 모습은 공공의 질서 유지가 결코 시민들의 자발성까지는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방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서기관 그랑 역시 질서유지를 유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 잔에 대하여 얘기할때나,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쓴 것을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나눌 때 패스트는 다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아울러 자신의 글쓰기 활동에 대해서도 정열과 열의는 그 어떤 것보다 그랑을 주체적이고 활기차게 만들었다. 이렇듯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관심사와 관련된 일을 할때는 더욱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을 처리해 간다. 반면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르외 역시도 늘 피곤에 지쳐하며 나중에는 “나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진다.”며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이렇듯 대재앙의 위기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강요하는 규칙과 법령을 따르지만 결국 쉽게 의욕을 상실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바뀌게 된다는 점입니다. 수동적이 삶의 자세, 무기력, 우울감에 시달리면 결국 의욕을 상실하고 마음속에서는 견딜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분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욕망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대재앙 앞에서 질서에 의한 수동적 삶보다 개인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대재앙 앞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개인의 행복은 주관적 만족감이다. 행복을 느끼는 방법과 절차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강제적으로  통제하게 되면 그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물론 도시가 통제됨으로 해서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지만 그로 인해 주변의 소중함을 깨닿게 된다.

 

하늘, 금빛 광선...등등 자신의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으며 대재앙의 시기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감을 채워가려고 노력한다. 즉 강요된 질서로 대재앙을 극복하며 우선적 가치에 두고자 하지만 아무리 질서를 강조하고 우선시 할 수도록 사람들에 그것에 분노한다.

 
 개인은 행복을 위해 미래를 꿈꿀 수 이 있게 한다. 패스트라는 질서유지를 위해 사람들은 시청에서 시키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격리 되고, 소식을 단절등으로 인해 더욱더 큰 고통에 시달게 된다. 즉 사람들에게는 페스트에 따른 고통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더 큰 고통으로 여겼다.

 

 

 

책에 보면 당시 사람들은 가족들 중 패스트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렇게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했다. 당시 당국에서 패스트환자를 격리수용하고자 할 때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당국이 시행하는 규칙에 강력하게 저항하고자 했다. 그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면서 미래에 대한 꿈도 꾸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어 정해진 규칙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는 수많은 소독절차를 잊어버리며 페스트 환자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결국 너무 오래동안 지속되는 고통속에서 자신의 뜻대로 하나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더 욱 절망하고 귀찬항 했다. 그러나 랑베르와 같은 인물은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용기내어 상황을 헤쳐나가게 되었다.

 
  결국 대재앙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수많은 질서가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그들을 수동적으로 따르게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그것에 대한 수용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만이 더욱 간절하게 만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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