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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장유유서의 오해와 진실?> - 현대사회 장유유서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지하철, 버스에는 노약자석, 일반자석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가끔씩 노약자석이 만석이 되면 일반자석 앞의 노인분들 중에는, 어른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며 큰소리로 앞자석의 젊은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경멸의 언사를 표현합니다. 

그러나 승차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경우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선착순으로 열차를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우리사회도 나이서열의 장유유서를 강요하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모습들이 보여집니다.

 

 

 <맹자>의 오륜 중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장유유서의 인간관계는 강요되는 면이 있습니다. 장유유서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의미와 현대에 사용되어지는 의미가 사뭇 달라지면서 많은 오해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장유유서의 담겨진 의미는 원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질곡을 거치면 어떻게 변질되었으며, 앞으로 장유유서가 전통으로 남기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윤리성을 함유하며 거듭나야 할까요? 모든 것은 역사적 변모를 거듭하며 변화한다고 합니다. 지난 고전 속에서 우리가 미쳐 깨닿지 못한 온고지신의 아름다운 미덕을 재해석하고 오늘날 현대사회에 부족한 윤리성을 채워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맹자>에 나오는 오륜은 동아시아 사회의 중요한 사회윤리였으며, 인간관계의 기본적 윤리 덕목이었습니다. ‘장유유서’가 봉건적 유교 윤리덕목이었으나 여전히 우리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장유유서’의 전통적 미덕을 살려 어른공경의 윤리적 덕목으로 확대발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현대사회의 ‘장유유서’는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 권위문화로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4차산업혁명 이후 개인의 독창성, 창의성이 요구되어지는 시대에서의 사회적 윤리로서는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장유유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적 관계의 윤리덕목으로의 유효한 것일까요? 아니면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폐단을 야기하는 덕목으로 새로운 윤리적 덕목으로 변모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전통사회의 장유유서의 의미는 현대사회에 적합한가?
<맹자>에서 말하는 장유유서는 친족관계에서 지켜야하는 위아래 질서를 의미했습니다. 즉 초기의 장유유서는 농업사회에서 대규모 가족단위로 살던 시대에 가족관계의 위계질서, 사회적 질서유지체제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서는 항렬중심의 친족관계가 중시되었다면, 해방이후는 장유의 의미가 계급, 지위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군대문화, 관료제 사회문화에 적용되면서 한국의 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식의 계급의 장유는 산업화 시대 일사불란하게 효율성을 만들어냈고 고도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개인중심으로 해체되는 경향성이 강한 사회로 이행되고 있습니다. 전통사회의 혈족중심, 계급중심의 수직적 어른공경의 논리는 현대사회의 윤리적 가치로 제대로 적용되기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즉 친족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어른이 우선이라는 식의 논리나, 산업화시대의 계급, 지위 체제의 상명하달의 복종을 강요하던 생상방식이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대사회는 독창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산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현대적 사회의 변화에서 어른이고,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나이어린 이들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더 이상 생산적 사고가 될 수 없는 한계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둘째, 장유유서는 대한민국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가? 
장유유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며 변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장유유서 안에서는 농업시대의 대가족, 친족 중심의 운영을 위해서는 어른공경, 효개념을통해 안정적, 평화로운 사회질서 윤리로 작용했습니다. 

 

마을단위의 친족들이 서로 아는 인간질서 속에서는 친절, 공경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평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진전되면서 급격한 가족질서의 붕괴, 개인중심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살면서 기존의 전통적 유교 윤리관념은 세대갈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장유유서가 생활속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과도 먼저 나이를 물어보는 것을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서열화, 권위적 의식, 인간관계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장유유서의 어른공경을 가장하여 무의식적으로 나이에 따른 장유유서를 인간관계에게 강요하게 만듭니다.

 

어른들의 경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특별 대접, 공경, 우대를 은연중 요구하고, 젊은세대들은 이를 인정못하게 되어 세대갈등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장유유서의 나이서열화, 권위화적 인간관계적 의미해석은 문명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 현대사회에 장유유서에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자기를 세우려면 남을 세우려고 해야 한다. 자기를 넓히려면 다른 사람을 넓혀야 한다.’,‘내가 대우 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에게 대하라’ ‘내 몸을 이웃처럼 생각하라’ 축의 시대에 모든 성현들의 황금률이 나타내는 말은 결국 ‘이타심’입니다. 

 

장유유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어른이 아이보다 먼저 좋은 것을 하겠다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장유유서에서 어른이 아이보다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이타심을 먼저 베푼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장유유서의 의미해석이 기존의 상명하달의 수직적 인간관계질서를 의미하는 식의 윤리의식이라면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입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의 의미를 유지한 장유유서로 남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공경할 수 있는 주체로 먼저 행동해야 헐 것입니다. 즉 우리사회 전반에 일상사고의 대전환과 어른주체들의 이타적이고 주체적인 행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토론의 문화의 확산이 관용과 역지사지의 장유유서의 재해석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공동체가 모여사는 곳에서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유발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려만 들면 ‘눈에는 이에는 이’라는 보복법 내지 그이상의 분쟁이 남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윤리적 덕목이 존재했던 이유는 이러한 인간 분쟁을 최소화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가치로운 선행적 노력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윤리적 덕목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시대적, 사회적 변화속에서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인간관계의 가치관계가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어른과 아이라는 관계는 언제든지 존재할 수 밖에는 인관관계구조입니다. 그러나 예전의 수직적 관계의 가치를 가지고 일방적 공경과 강요를 강요하는 가치는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 유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평적 인간관계의 배려심이 우선될 때 미래적 가치로 남을 것이입니다. 전통적 미풍과 악습은 상호 세대간의 이해와 소통속에서 이어진다고 봅니다. 일방적인 강요는 결코 미풍으로 남을 수 없게 됩니다. 장유유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방적으로 좋은 것만 어른이 우선적으로 선점되는 장유유서라면 결코 현대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겁니다. 현대 사회속에서의 장유유서로 다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이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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