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빨리빨리 하다가 정말로 큰 코 다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빨리빨리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왜 이리 빨리빨리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 라고 한다. 운전을 하다보면, 길을 걷다보면, 건물을 짓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야 어떠하든 빨리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일을 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과정보다는 결과와 업적, 즉 성과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몇해전 외국에서 잠시 머물러 있을 때 이다.
우리집근처에서 5층짜리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다.
큰 건물은 아니고 우리식으로 보면 5층짜리 원룸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처음에 도착했을때 한참 뼈대를 올리는것을 보았다. 1년이지나 그 나라를 떠나려고 할 때 이제야 5층 건물이 올라간다. 내장공사, 인테리어등 아직도 마무리 해야 할 공정이 한참이다.
지중해에 있는 그들의 국민성이야 우리가 익히 들어 알 고 있다.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절대 서두르는 일이 없다. 씨에스타라고해서 날씨가 덥든 춥든 하루 3-4시간은 무조건 일을 하지 않는다. 저녁 6시가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일을 하지 않는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편 부러운 마음도 있지만, 너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 나라국민들은 왜 이렇게 게을러”.... 하는 것이 한국사람들끼리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모든 나라마나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정체성이 있으며 국민성이 있다.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리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 형성되는 그들의 국민성을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그 나라는국민들이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고 있으니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뉴시스>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한마디로 급한 성격.. 빨리빨리로 대변된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발전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것이 빨리빨리가 되었다. 빨리빨리의 정신은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태어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아이에게 영어테이프를 들려주고, 3-4세가 되면 벌써부터 학습지를 시작하고, 우리아이가 영재인지 하는 희망과 기대속에 영재판별검사가 유행하고, 많은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는 조기유학이 유행하고, 학년을 앞서서 배우는 선생학습이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빨리빨리 열풍에 기인한 조기학습이 많은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부모님의 조바심과 조급한 마음 때문에 어린 새싹들이 피워보지도 못하고 빛을 잃어가고 있다. 교육시장에서 가장큰 시장이 바로 유아교육 시장이다. 한국의 조기교육열풍은 정말 대단하다.

부모님들의 과도한 영어조기교육으로 아이들이 심각한 정서장애나 발달장애를 겪는 케이스는 종종 발견된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유아영어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방송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의 과도한 조기영어교육 욕심에 심각한 장애를 겪거나 스트레스를 겪는 아이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주는 프로그램에 전문가로서 참여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담당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많이 발견했다.
아이들이 읽지도 못하는 영어책을 산더미처럼 구입하고 영어공부를 강요하는 어머님, 어머니의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는 부모님,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에게 미국 교과서를 읽히기 위해서 강요하는 부모님...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심각한 영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이지만, 결과적으로 어려서부터 과도한 학습과 영어조기교육은 아동의 심각한 발달장애와, 심리적 공황, 영어울렁증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례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 물론 취합된 사례들이 다소 과하고 극단적인 케이스였다 할지라도, 어려서부터 너무 빠르게 영어교육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아이가 따라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다양한 교육을 시키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당장 영어능력향상이라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라도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부작용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반될 수 있다. 그 나이에 수반되어야 할 발달과업이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교육 방법이다.




몇해전《교육 전쟁》이라는 책을 쓴 마틴 메이어 청심국제중고 교사와의 인터뷰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린적이 있는데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어서 발췌해서 옮겨 본다. 하물며 외국인도 우리를 이렇게 바라다 보고 있으니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전에 쓰던 1000원짜리 지폐를 보면 이율곡 얼굴 옆에, 화살을 던져 항아리에 담는 놀이 '투호(投壺)'가 그려져 있습니다. 율곡 이이조차 공부(학문)는 게임(놀이)과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는 얘기이지요

한국의 모든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가능한 한 최고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픈 열망이 있다"고 운을 뗀 뒤 "한마디로 한국의 교육은 움직이는 인형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대못을 박았다. 무릇 교육이라 함은 두뇌·감성·의지력·신체 등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면의 계발을 목표로 해야 하는데 한국은 오로지 지적 능력, 그것도 단일한 교과목의 단순 암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성적을 올리려면 어쨌든 책상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책을 펴야 하니 최소한 의지력은 키우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의지력(will power)은 야망(ambition)과는 다릅니다. 의지력은 정신력, 결단력, 자제심을 포괄하는 의미이지요. 학습 성적을 높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건 야망에 해당합니다."

내 일곱 살짜리 아들은 저 혼자 마당에서 나비를 쫓고, 바닥에 누워 개미를 관찰하며, 나무와 얘기도 나눕니다. 가령 고전 소설을 읽힐 경우, 교사는 한국에서처럼 어휘력 늘리는 데 집착하거나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등을 질문해서는 안 됩니다. '이 소설의 어떤 메시지가 너에게 의미가 있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로는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고 자원은 없으니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운영 시스템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교육 제도를 바꾸지만 절대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이지요. 최소한 수년을 내다보고 인내심과 용기, 창의성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2009년 10월 10일기사> 


요즘은 빨리빨리가 무조건 단점으로만 지적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정신과 문화가 있어서 한국이 IT 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다는 기사도 본적이 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는 쉽게 지치고 각박해진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삶에는 여유가 없다. 조급증의 이면에는 현재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사실 게으른것보다는 부지러한 것이 훨씬낫다. 그렇다고 빨리빨리와 부지런함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빨리빨리는 우리의 조급증과 조바심을 대변하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불안함과 조바심을 절대로 아이들에게 전가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다. 어른들의 조바심에 아이들이 더이상 멍들어서는 안되겠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자.
빨리빨리 문화가 경제발전에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음을 100% 부인할 수 없더라도, 우리아이들을 빨리빨리 교육과 결부시킨다면 100% 부정적인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서 저자도 이야기 하고 있듯이 우리는 너무 근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아름다운 고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하지만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가? 가장 훌륭한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아프니까청춘이다 중에서>


학부모님들의 조급한 마음에 어린아이들의 가슴에 멍이들며, 빨리빨리 성과위주의 조변석개식 교육 정책으로는 현재의 교육문제를 절대 치유할 수 없다.
교육도 정치도 백년지대계라는 안목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과도한 짐을 주지 말아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의 아이들과 교육제도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겨준 것이 확실하다.

300x25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