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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통로의 새로운 코드 패러디, 한국의 문화적 풍토해서 가능한 일일까?


패러디문화의 급팽창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패러디는 해학과 풍자를 기반으로 작가나 작품을 모방하는 일종의 예술활동을 의미한다. 음악, 영화, 소설, TV, 광고,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패러디 활동이 이루어진다.

특히 정치관련 패러디는 일반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과거의 암울했던 정치시대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므로 정치관련 패러디가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러나 패러디는 단순한 모방차원은 아니고, 패러디를 한 작품이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에서 베껴쓰는 표절과는 구분되는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표절과 패러디의 영역 구분일 것이다.

우리나리에서 패러디의 발전과 IT 기술의 발전과 일맥상통 된다. PC통신 시대를 지나서 웹의 발전에 따른 인터넷시대 요즘 같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시대의 발전과 비례하여 다양한 형태의 정보유통을 확산시켰다.


최근들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보온병 발언 패러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딸 특채의혹 관련 패러디, 무상급식 관련한 오세훈 서울시장 패러디 등 모든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많은 패러디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패러디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등의 보급이 일반화 되어 콘텐츠의 생산과 보급이 특별한 사람과 계층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같이 웃을 수 있는 유머코드에 패러디의 촛점이 조준되어 있다.







패러디 한국의 문화적 풍토위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시점에서 한국의 패러디 문화와 현황과, 한국의 문화적 풍토위에서 패러디가 정착 될 수 있을지를 짚어보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할 것 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패러디 문화의 현주소는 모방에 기반한 해학과 유머, 웃음에만 치중한 경향이 많다.

즉 해외의 패러디는 사회풍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국내의 패러디는 유머코드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가 어디에서 기인할까?


내 생각으로는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적 정치적 패러다임의 그늘이 한국인의 정서에 기반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다시말해서 늘 억압당해왔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정치적 성숙성이 아직 미흡해서 일 것이다.


무분별한 인터넷 악성 댓글도 분명히 문제이지만, 이분법적으로 우파좌파를 구분하거나, 대통령희화에 대한 거부감등으로 한때 무서워서 댓글도 못달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금번 석해균 선장 관련 문제도 그렇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빨갱이니 간첩이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부친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면 과연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성립되고 허락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제도적이고 법률적인 문제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끊임없는 소송과 고발로 이어지는 현실을 보면, 패러디문화의 한계가 예측되어 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패러디는 유머 코드에만 맞춰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어느누구나 한국에서 패러디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패러디 문화는 풍자보다는 해학에만 치우쳐,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보다는 일순간의 카타르시스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제작하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조차도 배꼽잡으며 웃을 수 있는 유머에 열광하고 집중하고 있다. 패러디가 새로운 의사통로의 코드로서 인식되고 받아들여 지기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감대형성과, 제도적인 뒷받침, 패러디를 새로운 의사코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문화적 공감대가 반드시 키워져야 할 것 이다.






기존문화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전달체계로 자리잡고 있는 패러디가 한국의 문화적 풍토위에서 정착화 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제도적 지원, 국민적 공감대 형성, 풍자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감대가 비례하여 발전될 때 비약적으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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