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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멀어진다고 느끼니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부모와 자식간은 7,000겁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한다.

겁이란 시간의 단위로 가장 길고 무한한 시간을 말한다. 겁 자체가 무한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겁이 7,000번이나 거듭되어야 부모 자식간의 인연으로 만난다고 하니, 부모 자식간은 한마디로 보통의 인연은 아닌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바쁜 일상을 살다보니, 아들보다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들이라는 인식은 명절이 되어야만 자각하고 늘상 아빠라는 이름으로만 바쁘게 세상을 살아간다.
7,000겁의 인연으로 묶인 부모자식간의 인연이 무색하리만큼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와 자식사이는 나이 먹는 만큼 멀어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것 같다.





아이들이 커서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이다.
기저귀 갈아주고, 걸음마 시키면서 키웠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은 참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다. 몇해전까지 아이들이 귀찮을 정도로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일에 방해를 주니 전화를 오래 할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고, 좋기도 하지만 참 귀찮았던 적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사주니, 전화 빈도수가 더 늘어난다. 전화자체를 놀이로서 인식하는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 아빠한테 전화를 끊임없이 많이 했다.

밤에 퇴근을 하면, 아이들이 먼거리에서부터 뛰쳐나온다. 점프를 해서 아빠 품에 안긴다. 무슨 말이 필요 없다. 아빠와 아들간의 무언의 사랑의 대화가 이어진다.

뽕송뽀송한 엉덩이를 가끔 어루만지기도 하고, 툭툭 쳐보기도 한다. 그저 사랑의 스킨십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아빠에게 전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자기들 필요할 때만, 아쉬울 때만 전화를 한다. 밤에 퇴근을 해도 반갑게는 맞아주지만 격렬한 점프로 아빠 품에 안기는 일도 많이 줄었다. 당연히 아이들이 커가므로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부모자식간의 교감과 소통은 달라진다.
그 전에는 없었던 진솔한 대화가 스킨십을 대신하고 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가끔은 아이들과의 끊이지 않는 전화통화와 무언의 스킨십이 그립기도 하다. 당연히 또래집단이 형성되어 그 자체의 비중이 높아졌다.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기도 한다.
서서히 가족보다는 또래집단의 문화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당연한 이치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낀다. 대견하고 빨리 품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나와 우리 부모님의 관계처럼 몸과 마음이 서서히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프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항상 절실하게 부모님이 떠오른다.
단순한 인연도 아닌 7,000겁의 인연으로 만난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몸이 떠나있으니 마음마저도 소원해 진 것 같다. 어린이날도 다가오고 어버이날도 다가온다. 무슨 Day나 명절때만 부모님을 찾아 뵙고 문안드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번씩 어렸을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얼마나 천방지축이고 말썽을 많이 피웠던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을 우리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묻게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었던 부모님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헤아렸는지 반성도 하게 된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아이들에게 섭섭함을 느끼지만, 부모님을 떠나면서 부모님을 섭섭하게 해드렸던 것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당연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가 되니 무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두 아이의 부모이지만 영원히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고 산 것 같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해 간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진짜 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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